[스크랩] 딸아이는 스무 살 / 이 가을
딸아이는 스무 살 / 이 가을
녹음이 우거지고 더욱 짙어지는 계절 칠월. 아침부터 쏟아지던 장맛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두려울 만큼 쏟아 붓더니, 저물녘에는 비도 쉼을 얻을 요량인지 조금씩 잦아들면서 가냘프게 내리는 것이, 어느 고독한 영혼이 못다 부른 노래처럼 아리고 아프게 들리는 밤입니다.
관악산 녹음이 쏟아 진 푸른 기슭에 숨어 온 산을 휘저으며 울어, 내 방 창까지 들려와 가슴을 아리게 하던 소쩍새 소리보다는, 한결 덜 쓸쓸하지만 가냘프고 아릿하게 빗소리가 들리는 밤이면, 잠자리에 드는 것이 못내 미안하기도 하고, 괜한 혼자만의 감상에 젖어 책을 펼쳤다가, 차도 우려 마시면서 곤했던 일상을 돌아보곤 합니다.
내 삶이 바빠 때로는 짜증스럽고 피곤하더라도, 더러 견딜 수 있는 힘이 되는 것 중 하나는, 자연에서 만나게 되는 이러한 자잘한 것들이 아닌가 합니다. 계절과 자연, 나는 계절이 바뀔 때 마다 내 나이를 떠올려 보곤 합니다. 어느 계절만큼 왔을까 물론 억지스런 추측일지 모르지만, 가을이란 계절로 지금 막 들어서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계절을 놓고 볼 때 가을이라 하면, 엊그제 새해였던 것 같더니 어느새 이렇게 많이 왔나하는 생각이 삶의 나이에도 적용이 되어 잡을 수도 없고, 잡아도 잡히지 않아 야속하게 빨리 지나가는 세월이 밉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흐뭇하기 까지 합니다.
딸만 하나인 내게 아기 적에는 백일만 지났으면, 아니 빨리 돌이 지나서 걸었으면 하면서, 내 아기가 칠월의 쑥쑥 자라나는 풀처럼 빨리 자라기만 바랐었는데, 어느새 유치원 3년에 초 중 고를 거쳐, 대학생이 된 딸을 볼 때면 내 나이 먹어감도 괜찮다 생각이 들다가, 비 온 뒤 깨끗하고 싱그러운 잎사귀처럼 청순하며 곱고 순하게 자란 딸아이의 어여쁜 모습에는 질투가 일기도 합니다. 딸아이 모습을 보고 질투하는 어미가 어이없기도 하지만, 역시 나는 어미이기 이전에 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민망한 웃음을 웃었습니다.
아이가 13세가 되고 몇 달이 지난 후 초경을 시작할 때는, 왜 그렇게 설레며 좋던지 근무 중인 남편의 직장으로 전화해서 초경을 알리고, 초경파티로 필요한 물품을 부탁했더니, 이른 퇴근을 한 남편의 품에는 안개꽃 섞은 장미가 한 아름이었고, 아이 가슴을 예쁘고 건강하게 만들어 줄 브레지어가 담긴 선물상자를 들고 불쑥 들어오며 쑥스러워하던 표정이란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재미있습니다.
코밑이 까뭇해 지기 시작한 소년이 이성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들켜 쭈뼛거리는 모양새 같기도 하고 결혼 전 4년간의 교재가 시작되던 즈음, 두 번째 데이트에서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말기를 여러 번 하고 나서야 “저기 손잡고 싶은데.... 잡아도 돼요?” 그 말을 듣자 숨도 쉬지 않고 속사포처럼 “아니요 싫은데요” 거절의 말에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져 어찌 할 바를 몰라 허둥대던 모습이 지금과 흡사했습니다.
이제는 어린이에서 소녀가 되어 가는 때, 마음과 몸가짐에 대해 얘기 해주고, 아이가 당황하지 않도록 깔끔하게 뒤처리 하는 방법까지 일러주며 부모가 함께 기뻐해 주고, 초경파티를 시작으로 제 아빠가 주는 꽃다발과 선물을 받고는 어색했던 격식과 형식이었지만 그로 인해 마음에 안정을 찾았는지, 행복해 하는 표정은 나름대로 소녀가 되었다는 생각인지 행동거지에서도 뿌듯해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친가, 외가의 할머니와 고모 이모들께도 전화로 알렸더니. 아이와 통화하며 축하의 인사를 건네시고, 함께 기뻐해 주기에 내 소녀 적을 돌아보았습니다. 그 때만 해도 생리적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워야 할 그것이, 무슨 죄이거나 부끄러운 양 숨기며 쉬쉬하던 옛날과는 달리,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제약이 많은 약자의 위치에서 가질 수밖에 없는,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사회적으로 여자니까 하면서, 등 떠밀어 들어간 틀에 얽매여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딸아이가 초경을 했던 기억이 내 손톱에 봉숭아꽃물처럼 아직도 선명한데, 아이는 올해 이 십 세가 되어 성인식을 치렀습니다. 만으로 이십 세가 되려면 일 년이 남았지만 대학 2학년이라 한 해를 더 미루는 것보다는, 순결 약속도 겸하는 것이기에 남자친구와 사촌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아이가 받은 이십 송이의 붉은 장미가 와인 잔 속으로 들어간 듯 빛깔 고운 잔을 들고 축하한 후,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내 아이의 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갈 이 세상이 녹록치만은 않다는 사실에, 우울해지기도 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쓴맛 떫은맛 짠맛도 알아야 하지만, 와인의 향기와 맛처럼,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 성숙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내 아이의 어미다운 지극히 주관적인 바람을 가져봤습니다.
바람이 무질서하게 드나드는 들녘, 길가에서 계절을 노래하는 목이 긴 코스모스는, 소소한 바람에도 쿨럭일 것 같아 안쓰럽지만 가냘프고 여린 내 아이는, 칠월의 장맛비와 뙤약볕에서도 잘 자라 예쁜 빛깔의 열매를 탐스럽게 달고, 색의 향연을 펼칠 자연 속 저 실 한 것들처럼, 학생으로서의 본분도 충실하며 내면을 잘 가꿔 더욱 아름답고 지혜로우며 건강한 이 십 세의 성인이 되었습니다.
어느새 훌쩍 자란 딸아이를 보면서, 아이가 자라는 동안 어미의 마음은 함께 자라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만 어미라서, 딸을 키우는 어미이기에 그렇겠지요. 미물도 그러하거늘 사람임에야 라며 자위해봅니다.
이십대는 부단히 성장해 가야 하는 투쟁鬪爭의 삶이기에, 부모와는 별개인 채로 나의 삶이란 화폭에 무엇으로 채울까, 스스로 선택해서 채색해야 하는 조심스럽고 용기 있는 시기이며, 내 나이 사십대는 뜨거웠던 가슴도 알맞게 식어질 나이이면서, 자식에게는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엄마가 이리 할 수밖에 없고 이러는 것은 자식에 대한 어미의 사랑이야” 하면서 집착을 하게 되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비 내리는 이 밤, 끊어질 듯 이어지다가 이제 그쳤나 싶어 창을 열면, 흐느끼듯 내리는 빗소리에 꽃으로 불려도 좋을 내 아이의 이 십 대 같은 여름밤은 수묵화의 빛깔로 점점 깊어만 갑니다. / 07년 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