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가을의 詩

폐선 - 이가을

시인 이가을 2019. 8. 5. 02:12

폐선 - 이가을


바닷물에 젖은 소소리바람은

날 선 한기를 싣고 살 속으로 파고 들고

직립의 시간 속에 몸져누운 배는

녹슨 세월에서 뻘건 눈물만 흘리고 있다 

하루 두어 번 뱃전을 두드리는 바닷물이 

귀에 대고 물결의 말을 할라치면

바다에 나가고 싶어 들리지 않는 귓구멍으로

가만가만 물소리를 만지고 있다


어떤 날은 푸석한 몰골로 일몰을 읽고

어둠이 슬어놓은 별 뱃전까지 오는 시간에는

파도에 베인 생채기의 몸으로 멀미하는 꿈을 꾸며

또 신열로 헛소리하다가

그리움에 떨며 잠에 들기도 한다


바다는 희붐한 어둑새벽을 불러 물비늘을 깨운다

그때였을 것이다 

바튼 기침을 하던 배가  

바다까지 흠씬 젖도록 웅 웅 울던 때가...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설움에도

입 벌리고 설레는 아침을 함구하더니

갯벌을 걸어 나와

멀리서 올 밀물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