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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1강] 대상에 대한 표현.1

시인 이가을 2014. 5. 31. 10:05

[11강] 대상에 대한 표현.1

강사/김영천


대상의 표현이라는 주제에 대해 조태일님은

1)표현은 정확하게
2)표현은 구체적으로
3)표현은 쉽고 순수하게
4)표현은 개성적이고 독창적으로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에
다른 설명이 없어도 여기까지 공부하신
여러분께서는 그냥 알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시문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좀더
깊이 기억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한 항목씩
설명해보겠습니다.

1)표현은 정확하게
먼저 고려시대 쌍벽을 이루던 두 문장가 김부식과 정지
상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알기 쉽게 풀어놓은 시와 한자음을 달아놓습니다.

하루는 김부식이 정지상의 시가 좋아서 이 구절을 내게
달라고 했으나 정지상이 거절했습니다, 그 후 김부식이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김부식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시인 즉,

"절에서는 불경소리 그치고 琳宮梵語罷(림궁범어파)
하늘은 유리처럼 맑다" 天色淨琉璃(천색정유리)

하루는 김부식이 봄이 되어 그 봄을 맞는 시를 지었
습니다.

"버들빛 천 줄기 푸르고 柳色千絲綠(류색천사록)
복숭아꽃 만 점 붉구나." 桃花萬點紅(도화만점홍)

참 멋있는 시이지요? 그런데 느닺없이 정지상의
귀신이 나와서 김 부식의 뺨을 때리면서 "버들의 천
줄기 누가 세어 보았으며, 복숭아꽃 만 점을 누가
헤아려보았느냐" 하면서

"줄줄이 버드나무 푸르고 柳色絲絲綠(류색사사록)
점점이 복숭아꽃 붉다." 桃花點點紅(도화점점홍)
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두 시가 다 내용이 같을 뿐만
아니라 단 한 글자씩만 바꾸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있느냐 하겠지만, 그만큼 시를 쓰는
글자에 중요성입니다. 시어를 쓸 때는 그만큼
표현의 정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적당히
그냥 생각나는 말로 써버리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쉽게 말해서 시어를 고를 때부터 지극 정성을
드리라는 말이겠지요.

좀 설명이 길지만 이 두 표현에 대한 조태일님의
해설을 옮깁니다.

"정지상이 김부식의 따귀를 때리며 고쳐 쓴 "줄줄이
버드나무 푸르고/점점이 복숭아꽃 붉다"는 구절은
내용 면에서 김부식의 그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시는 의미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언어표현이
아니며, 어떤 사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언어표현
도 아니라 정서적 울림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기에
두 시의 의미는 서로 비슷하지만 가슴에 파고드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김부식이 표현한 '천 줄기'와
'만 점'은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이 든다. 왜냐
하면 사물을 관찰하고 그 것을 언어로 가시화하는
시인의 태도가 안일하고 형식적이기 때문이다. 시인
은 푸르른 버드나무와 붉은 복숭아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두리뭉실 '천 줄기'와 '만 점'이라
는 언어를 선택했지만 이 언어들에는 필연성, 즉 꼭
그 언어이어야만 하는 유일성이 없다.

즉 시인은
별로 고민하지 않고 적당하게 이 언어들을 씀으로써
시어의 생명인 정서적 울림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정지상이 쓴 '줄줄이'와 '점점이'는 가장
쉽고도 정확하게 버드나무와 복숭아꽃의 특징을
감각적으로 살려내고 있다. 여인의 긴 머리카락처럼
무성하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한번 상상해 보라.
'천 줄기'라는 언어보다 '줄줄이'라는 의태어가 훨씬
더 생동감 있게 우리들의 감각을 자극할 것이다.

또한 '줄줄이' '점점이'라는 의태어가 빚어내는 음
악적인 효과까지 함께 곁들여져 버드나무의 무성한
푸르름과 복숭아꽃의 붉은 빛이 더욱 깊고 황홀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비교해 볼 때, 정지
상이 선택한 언어들이 대상을 표현하고 그것들을
살려내는데 성공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것은 그의 시어들이 빚어 낸 정확한 표현 때문
인 것이다."

여러분께서 조태일의 말 그대로 생동감이 무성한
푸르름이나 붉은 꽃의 색깔이 더욱 깊고 황홀한 것까지
느껴지는가는 모르겠습니다. 또 꼭 그의 의견에
동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시어의 선택이 정확해야한다는 그의 의견만은
너무도 확실한 이야기이어서 길어도 옮겨보았습니다.

오늘은 진도가 많이 나가지 못했네요.
새 털 같이 많은 날이니 천천히 하시기로 하고
좋은 시들을 또 여러분을 위해서 몇 편 올립니다.

우선 서정주님의 <자화상>을 올리는데요. 좀 어려
운 시인 것 같아도 시를 다루는 문학평론가라면
다 한 번씩은 다루었다 할 정도로 유명한 시이며
서정주가 23세 때 쓴 시인 것을 알면서 읽기 바
랍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이며 나는 왔다.

이 시를 읽어보면 시어가 아닌 일상적 언어
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심
하여 시어로 사용하였기에 그 정확한 표현은
감동과 함께 시를 살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표현들을 빼고 다른 언어로 대치하면 바로
시의 감동이 사라져버리는 독창적 언어체계입니다.
(팔할, 죄인, 천치, 혓바닥, 수캐 등은 이렇게
시 밖에서 볼 때는 일상에서나 흔히 쓰는 언
어임을 그냥 알 수 있습니다.)

잘 아시는 시 김현승님의 <플라타나스>를 올
립니다. 여러분들께 도움이 되시기 위해서
시의 부분을 싣지 않고 전문을 실으니 강의가
그 때문에 좀 길어지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
랍니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나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은 모르나,
플라타나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을 올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나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나스,
나는 너와 함께 神이 아니다!

수고론 우리의 길이 다 하는 어느 날.
플라타나스,
너를 맞아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 있느냐?
나는 오직 너를 지켜 네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참고로 위의 시에 나타나는 플라타나스의 모습은
그냥 단순한 나무의 차원이 아니고 사람의 모습으로
의인화 되었음을 인식하시고 읽으시면 더욱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와는 상관 없지만 시 한 편 더
읽겠습니다.

이제무님의 <무덤>입니다.

아들아 무덤은 왜 둥그런지 아느냐
무덤 둘레에 핀 꽃들
밤에 피는 무덤 위 달꽃이
오래된 약속인 양 둥그렇게
웃고 있는지 아느냐 넌
둥그런 웃음 방싯방싯 아가야
마을에서 직선으로 달려오는 길들도
이 곳에 이르러서는 한결
유순해지는 것을 보아라

둥그런 무덤 안에 한나절쯤 갇혀
생의 겸허한 페이지를 읽고
우리는 저 직선의 마을 길
삐뚤삐뚤 걸어가자꾸나
어디서 개 짖는 소리
날카롭게 달려오다가 논둑 냉이꽃
치마폭에 폭 빠지는 것 보며

*시인은 죽음과 슬픔 등 여러가지 어두운
무덤에서 어두운 시의 씨앗을 얻은 것이 아니라
무덤의 봉분, 밤에 떠오르는 보름달,
산을 오르는 꼬부랑 길 등 곡선의 부드러움.
포용, 원만함, 겸허한 마음 등을 깨닫고
직선의 마을 길과 대비시키며 그의 시를
완성시켜 나갑니다.

출처 : 시동인 피아(彼我)
글쓴이 : 바람/채전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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