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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틈, 그 아름다움 - 정경희

시인 이가을 2014. 6. 2. 00:19

 

 

 

 

틈, 그 아름다움 - 정경희

 

 

이른 아침, 숲을 찾는다. 고개 젖혀 하늘을 본다. 아까시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흰구름, 굴참나무 빗질에 따라 살랑거리는 파란 하늘, 잎사귀 끝에 뛰노는 햇살이 이쁘다.

 

숲은 나무와 나무들의 틈이 가꾼다. 나무들이 빽빽한 숲은 틈이 없어 어두침침하고 푸르름도 죽어 있다. 어둠 속에서는 대부분이 빛을 잃고 아름다움도 잃는다. 싸릿대로 엮은 울타리, 사철나무와 쥐똥나무 담장에도 틈이 있다. 블록으로 틈을 모두 막지 않은 얼기설기한 담장 위의 찔레꽃이나 장미가 더 아름다운 것도 바로 무언가가 깃들이 수 있는, 엿볼 수 있는 그 틈이 있는 까닭은 아닐까.

 

틈은 살아 숨쉬는 한지다. 한지는 보이지 않는 틈이 있어 바람이 드나든다. 물기를 잘 빨아들이는 것을 보면 관대하고 남의 상처를 따스하게 감쌀 줄 아는 사람 같다.

 

흙에 비가 스며들면 촉촉하다. 포장된 도로는 물이 잘 스며들지 않아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는 시멘트 블록이 깔린 길과 포장된 아스팔트 길에서는 터벅터벅 걷는다. 금세 발바닥이 부르트고 마음 안에서도 먼지가 풀썩거린다. 그런데 비를 머금은 황톳길에서는 사뿐사뿐 걷는다. 신발에 흙을 묻혀 가며 걷다 보면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도 부드러워지고 느긋해진다.

 

틈은 쉼이자 여유로움이다. 아름다운 결점이다. 틈에는 먼지도 앉고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자, 겸손의 자세이다. 틈이 있다는 것은 타인이 내 마음속을 비집어 열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거다. 마음을 내어 주며 그 누군가가 앉기를 기다리는 빈 의자이다.

 

언젠가 북한 아이들이 학예발표회 하는 것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한결같이 방실거리며 똑 같은 동작을 틀리지 않고 하는데도 정말 잘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제식훈련 같은 모습은 일사불란하기는 하나 보는 사람조차도 경직되게 한다. 빈틈없는 그러한 의식을 치르기까지 얼마나 많이 노력했으며 또한 고통스러웠을까. 우리 어린이들의 유치원 학예발표회를 가 보면 줄이 비뚤비뚤하고 행동도 되통스러운 것이 오히려 절로 웃음을 자아낸다. 빈틈이 있는 곳엔 가식 없는 웃음이 깃들이고 따스함이 전해온다.

 

"빈틈이 없다"는 말은 삭막하고 싸늘하다. 빈틈이 없이 완벽해지려고 남보다 노력해야 하고 자신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대하기가 어렵고 차갑게 느껴진다. 빈틈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결점을 고치려고 하는 만큼 상대도 완벽에 가깝도록 최대한 노력하기를 원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신뢰가 깨어져 그야말로 사람들 사이에서 불미스러운 '틈'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건물의 틈에 물이 새어들 경우에는 무너질 위험까지 안고 있다. 또한 홍수 대비해 쌓아 놓은 둑의 실 같은 틈을 하찮은 것이라고 방치하면 천천히 새어든 물이 무서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만큼은 '빈틈 있는'사람이 더 아름답다. 약간의 트임새가 있는 사람은 완벽주의자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인간미가 풍긴다. 실수를 자주 해서 피해를 주고 신용을 잃기도 하지만 남의 실수를 이해해 주고 슬플 때 같이 울어 주기도 한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와 달라고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이런 사람은 친구와 싸워 틈이 벌어졌을 때 화해의 손을 먼저 내민다. 관용과 배려의 따뜻한 틈을 가진 사람이다. 거만하거나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은 틈을 보이고 싶지 않아 상대에게 결코 화해를 청할 수 없다. 서로 빈틈이 없으면 그 관계는 계속 얽히고 온화해지기 어렵다. 서로의 몸과 마음을 해치는 냉정한 관계보다는 어느 한 쪽이 빈틈을 보여 먼저 마음을 여는 게 더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야 서로에게 상처와 아픔이 적게 남지 않을까.

 

느슨함이 없는 사람은 늘 주위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심지어 그것이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기 때문에 '빈틈없이' 행동하고 살아간다는 게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남에게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난 어떤 것에 대해 "그것도 몰랐냐?"라며 친구에게 핀잔 먹어도 그다지 심정 상하지 않는다. 내가 가장 모르는 부분은 주로 돈에 얽힌 세상 물정이다. 돈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꼼꼼하지가 않아 큰 돈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한다. 사람을 무조건 믿어 돈을 떼이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가려는 적도 많다. 신문값 같은 것을 더 내기도 하고, 장사하는 사람의 말만 믿고 상자째 산 과일이 썩어 있어 속상할 때도 있다. 난 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보며 눈물도 많이 흘리고, 갱충쩍어 실수도 잘한다. 나는 겉똑똑이다.

 

좀 모자란 듯한 사람이 세상 살아가는 데는 더 편할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야무지고 빈틈이 없어 보인다고 하니 불만이다. 너무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된 집은 오라고 해도 썩 내키지 않다. 나도 상대의 집 분위기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이라도 따뜻한 아랫목에 펑퍼짐하게 앉아 된장뚝배기를 먹고 싶다. 호화로운 식탁에 앉아 넥타이 맨 정장으로 품위를 지켜 가며 우아하게 먹는 안심스테이크는 제대로 소화가 될 것 같지 않다. 맘 편하게 허리띠를 풀어놓을 틈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부담감이 있어서일까.

헤픈, 헐렁헐렁한, 남들이 보기에 속여먹어도 좋을 그런 순박한 인상을 지니고 싶다. 집안에 먼지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기보다는 조금 지저분해서 놀러 온 애들이 맘껏 어질러 놓아도 덜 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하고 싶다. 옳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꼭 꼬집어 말하지 않고, 무언가를 알아도 "잘 모르겠는데요"라며 내숭 좀 떨어야겠다.

 

높다란 나뭇가지 사이에 둥지를 튼 까치를 보며 '사랑이 깃들일 수 있는 틈'이라고 중얼거려본다. 까치둥지는 비바람에 흔들리더라도 불안하지 않고 뭇사람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는, 따스한 보금자리이다. 그 둥지에는 바람도 놀다 가고 저녁 햇살도 앉았다 쉬어 간다. 사람들이 조심스러워하지 않고 내 가슴 안에 마음껏 둥지를 틀었으면 한다.

 

 

 정경희 작품집 <내 몸 속에는 서랍이 달그락거린다> 중에서

 

정경희

2004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5 '에세이문학' 여름호 추천 완료
수필집 : '내 몸 속에는 서랍이 달그락거린다'

 

 

 

출처 : 시 숲 길
글쓴이 : 소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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