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을의 영상詩

5295번 버스 - 이가을

시인 이가을 2015. 4. 14. 17:13
 
 
5295번 버스 
                         이가을 
잠들지 못하는 밤 
서재 문을 여니 고서에서 읽히는 
여유로운 표정을 본다     
오랜 시간을 견뎌 온 책에서는 
아홉 번 구운 죽염냄새가 난다
어둠이 방 안의 색을 지우고 있다 
덩그러니 어둠의 문장을 다 읽을 즈음 
까치발하고 들어온 달빛에 
책 속, 젖은 이름 하나가 따라 왔다 
긴 세월 참아내던 그 이름이
덥석 기억 속으로 데려간다 
귀퉁이가 닳은 책에서 빠져나온
사진 속 버스가 무릎으로 달려왔다
파도소리를 주유하고 
해안가를 달리던 5295번 버스다
저녁 해가 벌겋게 취해서야 
동백마을에 내려주던 그 버스였다 
슬며시 버스에 올라
그에게로 가는 열쇠를 꽂았다 
붉게 녹 슨 자물쇠는
소금바람에 우는 소라껍데기마냥 
쓸쓸히 세월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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