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의 詩

달밤 - 기형도

시인 이가을 2014. 12. 6. 15:16

달밤  / 기형도



누나는 조그맣게 울었다.
그리고, 꽃씨를 뿌리면서 시집갔다.

봄이 가고.
우리는, 새벽마다 아스팔트 위에 도우도우새들이 쭈그려앉아
채송화를 싹뚝싹뚝 뜯어먹는 것을 보고 울었다.
맨홀 뚜껑은 항상 열려 있었지만
새들은 엇갈려 짚는 다리를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다.

여름이 가고.
바람은, 먼 남국나라까지 차가운 머리카락을 갈기갈기 풀어
날렸다.
이쁜 달이 노랗게 곪은 저녁,
리어카를 끌고 신작로를 걸어오시던 어머니의 그림자는
달빛을 받아 긴 띠를 발목에 매고, 그날 밤 내내
몹시 허리를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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