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상사(腹上死)
이덕규
쟁기질하던 낡은 경운기 한 대가
보습을 흙속에 박은 채, 밭 가운데 그대로 멈춰서 있다
평생 흙 위에서 헐떡거리다가
한 순간 숨이 멈춰버린 늙은 오입꾼처럼
평소 그에게 시달렸던 잡초들 우북이 달라붙어 그를 헐뜯는 동안
마지막 남은 양기를 양 끝에 모아
땅속 깊숙이 쥐어짜 넣듯 일의 뒤를 즐기고 있다
어디든 오래 묵어 자빠진 비알 밭의 속살이
탱탱하게 선 날을 밀어 넣으면
고압전류에 감전된 짐승처럼 심장이 터져라 부르르 떨며 달려가던,
그가 지나온 이랑마다 푸른 정전기 일 듯
새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던가
어느 집도의(執刀醫)가 급하게 열었다
대충 봉합해버린 가슴 언저리 볼트 몇 개가 느슨하게 풀려
무시로 드나드는 바람을 따라 그의 몽롱한 의식 속으로 들어서면
조용하다, 먼지 한 톨 없는 엔진실
이모노 합금 바닥에 아직 남아 굳어가는 검은 기름의 침묵이
꺼진 흑백화면 유리알처럼 반짝인다
거기, 한 사내가 이제 막 일을 마친 듯 거친 수염을 쓰다듬으며
우묵한 눈망울을 굴리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