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가을의 詩

빈 오두막에서 - 이가을

시인 이가을 2015. 5. 11. 12:47
 

 

오두막에서

                                      이 가을 

 

오두막에는 어떤 계절도 없다

다만 사립문께로 걸어 나온

오두막의 계절만이 무량하게 존재할 뿐.

햇살이 초가의 센 머리칼을 빗기는 한낮이면

상념에 잠겨 섬돌에 기대앉은 문짝은

앙상한 제 갈빗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마른버짐 핀 황토벽엔 등잔불 벽화가 소슬하고

에움길 걸어온 세월에 토담마저 허리가 굽었다

집으로 들어서지 못 한 계절이

무성했다가 스러지기를 몇 몇 해

마당에 드러누운 헛배 부른 항아리들이

거칠어진 오두막의 숨소릴 듣고 있다

 

달뜨는 밤, 바람 불면 그 옛날

그리운 얼굴처럼 달려오는 나무그림자에

사립문에 바투 선 누렁이집이 반갑게 짖어대면

어머니 가슴마냥 다 내어주던 오두막은

가만사뿐 사립문께로 걸어 나와

멀리서 올 발자국소리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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