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 - 이가을
바닷물에 젖은 소소리바람은
날 선 한기를 싣고 살 속으로 파고 들고
직립의 시간 속에 몸져누운 배는
녹슨 세월에서 뻘건 눈물만 흘리고 있다
하루 두어 번 뱃전을 두드리는 바닷물이
귀에 대고 물결의 말을 할라치면
바다에 나가고 싶어 들리지 않는 귓구멍으로
가만가만 물소리를 만지고 있다
어떤 날은 푸석한 몰골로 일몰을 읽고
어둠이 슬어놓은 별 뱃전까지 오는 시간에는
파도에 베인 생채기의 몸으로 멀미하는 꿈을 꾸며
또 신열로 헛소리하다가
그리움에 떨며 잠에 들기도 한다
바다는 희붐한 어둑새벽을 불러 물비늘을 깨운다
그때였을 것이다
바튼 기침을 하던 배가
바다까지 흠씬 젖도록 웅 웅 울던 때가...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설움에도
입 벌리고 설레는 아침을 함구하더니
갯벌을 걸어 나와
멀리서 올 밀물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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